현재 한국노총의 위기는 단순한 노총의 위기뿐 아니라 노동운동의 이념 및 진로에 관한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신(新) 자유주의의 공세와 현 정권의 자본가 우호적인 노동자 말살정책이 열악한 노동진영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노동운동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진정한 자기개혁 과 노동운동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소수 몇 사람들에 의해 좌우되는 철저히 현장과 유리된 현실 추수적인 결정과 활동들, 그리고 변화하지 못하는 경직된 사고들이 현장 노동자들에 의해 준엄하게 심판 받고 외면 당하는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노총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장 노동자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진정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고민하고 밤을 새워 대안을 마련하는 마음가짐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합니다. 노동운동의 원칙을 재정립하고 조직질서를 새롭게 바로 잡으면서 철저한 자기반성 위에 개혁의 과제가 마련되고 추진하여야 합니다.
저는 은행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 딛었지만 이후 진정한 참 노동운동을 펼쳐나가기 위해 온몸을 바쳐 헌신해 왔습니다. 그 인고의 세월 속에서 제가 얻었던 소중한 원칙은 노동운동에 대한 바른 길은 항상 현장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언제나 현장의 노동자와 눈 높이를 맞추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요구를 조직하고 관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운동 활동가로 살아왔던 25년간의 지난(至難)했던 삶
저 이용득은 노동운동을 하면서 2번씩이나 감옥의 차가운 독방에서 고통의 나날을 지냈습니다. 파업주도자 혐의로 전국에 지명수배를 당하여 괴로운 도피생활을 겪었으며 구속되어 동상으로 온몸이 얼어붙는 괴로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은 오히려 투쟁의지를 더욱 단단하게 했고 저의 노동자철학을 더욱 굳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본과 권력이 옭아매고 구속할수록 노동운동에 대한 저의 확신은 더욱 강고해졌습니다. 이런 제 곁에는 항상 동지들의 따뜻한 위로가 있었습니다. 특히 해외 노동형제들조차 국제 노동자대회에서 저의 석방을 위해 뜨거운 동지애를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들 몇 가지.....
먼저 상업은행 노조위원장 시절 국내기업 중 최초로 여성육아휴직제도를 상업은행 노조 단독으로 쟁취하면서 전국적으로 파급효과를 확산시키게 하였으며 결국 법제화되어 여성노동자들의 권익향상에 크게 이바지 한 바 있습니다.
또한 96년 한국노총의 조직국장 재임 시 민주노총과 조직적 경쟁력을 제고하면서 당시 한국노총 산하 하부조직이 민주노총으로 대거 이탈하는 상황에서 이를 막아냈습니다. 당시 상황은 자고 나면 몇 개씩 한국노총 산하조직이 민주노총으로 이탈하면서 한국노총이 조직적으로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합섬 노조 분신투쟁 당시 처음으로 양대 노총의 연대투쟁사업을 주도하고 또한 금속노련 산하의 시그네텍스 파업시 노숙투쟁 등을 통해 한국노총의 조직적 잠재력을 산하조직에게 인식시킴으로서 조직적 이탈과 동요를 막아냈던 것입니다.
노동법 파동으로 전 노동계가 들썩거리던 96년 동투(冬鬪)때에는 한국노총이 대중적 전국집회나 전국총파업의 경험이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박인상 한국노총 위원장께서 저를 투쟁 상황실장으로 임명하면서 이러한 국면을 정면으로 돌파하라는 특명을 내렸습니다. 당시 화이트칼라 노조출신인 제가 조직국장과 투쟁상황실장에 보임된 것을 두고 주변에서 우려와 시기의 눈길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투쟁을 조직한지 불과 보름만인 11월24일 6만여명의 전국집회를 조직해내었고 이듬해 97년 1월에는 한국노총 총파업과 양대 노총 연대총파업을 성사시켰습니다. 이러한 4개월 동안의 총투쟁 산물로 한국노총이 명실상부 투쟁력을 겸비한 새로운 투쟁조직으로 거듭나는데 밀알이 되었다고 감히 자부하고 싶습니다.
또한 금융노조 위원장으로서 2000년 3월에는 수 천명 이상의 조합원을 가진 대기업 단위의 금융권 노조들이 누리던 기업별 노조의 기득권 포기를 설득해내면서 한국노총 최초의 산별노조를 건설하였습니다.
이 산별의 틀을 무기로 그해 7월에는 관치금융 철폐를 위한 최초의 산별 총파업을 전개하였으며 공개적인 대 정부 협상을 통해 이른 바 7.11 노․정 합의를 이끌어내었습니다. 그 외 세 번에 걸친 파업투쟁, 최초의 산별 직선제 실시, 최초의 주5일 노동제 쟁취 등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는 소신과 신념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매년 절반 이상을 길바닥에서, 스치로플 위에서, 차가운 마루바닥에서 동지들과 함께 했던 세월이 여전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노총의 위기를 조직적 반전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이제 한국노총의 위기는 바로 노동운동의 교과서적인 원칙을 다시 세우고 이를 무기로 정면으로 돌파해야 합니다. 무너져 있는 현장 노동자들간의 결속을 더욱 강화시키고 보다 열린 공간 속에서 주요 사업과 정책들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재 한국노총의 조직적 위기를 지금 이 시간에도 현장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고 있는 현장의 동지들은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바로 조직 재건에 대한 열망과 개혁에 대한 시대적 요구로 승화되어 현장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동형제 여러분
누구나 개혁을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 이용득은 개혁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제가 1년 6개월전 한국노총 개혁특위위원장을 하면서 제시했던 개혁방안들과 이를 추진할 소중한 전술 전략들을 이제는 당당히 추진하겠습니다. 위기의 한국노총을 개혁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정면으로 돌파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뼈아픈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한 패배는 또 다시 되풀이되고 말 것입니다. 어제의 실패를 온 몸으로 끌어안고 벼랑 끝으로 내 몰린 현장 노동형제들의 피울음을 가슴에 담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결코 꺽일 수 없는 불패의 신념으로 한국노총 개혁의 바람이 되어 반드시 희망의 깃발을 다시 펄럭이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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