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뉴스위크, ‘현대판 노예’ 亞 이주노동자 조명
ㆍ최대 2700만명 인신매매성 강제노역 시달려
캄보디아 청년 찬 함은 태국이라면 이제 진저리가 난다.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겠다며 태국의 한 수산업체에 취직했다가 영문도 모른 채 아프리카까지 끌려가 고기잡이에 시달린 탓이다. 찬이 2005년 돈을 벌기 위해 캄보디아인 중개인에게 소개받은 일자리는 친환경 고기잡이로 알려진 태국의 수산업체 ‘시리차이 피셔리’. 중개인은 통조림 공장의 노동자로 일하면 한달에 190달러를 벌 수 있다며 유혹했다.
찬은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한 선박에 태워졌다. 그리고 알 수도 없는 곳으로 끌려갔다. 생활은 감옥 그 자체였다. 캄보디아 인권단체의 도움을 얻어 탈출하기 전까지 27개월 동안 아프리카 소말리아 근처 해역에서 하루 4시간밖에 자지 못하며 고기잡이에 시달렸다. 한때 탈출을 계획한 찬은 업체와 결탁한 소말리아 해적의 위협으로 공포에 떨어야 했다. 집에 돌아온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밀린 임금 가운데 손에 쥔 금액은 겨우 500달러. 찬의 아버지는 “캄보디아에서 벌더라도 한달에 100달러는 넘게 버는데 이게 무슨 꼴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찬처럼 ‘아시안 드림’을 품고 이웃 나라로 향하는 아시아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열악한 환경. 착취당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와 인신매매가 결합하면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현대판 노예’ 문제가 세계화의 새로운 그늘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미 시사주간 뉴스위크에 따르면 지난해 아시아의 주요 노동자 수출국인 필리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캄보디아에서 타국을 향한 사람은 약 250만명에 이른다. 이들의 행선지는 주로 말레이시아나 대만 등 본격적인 성장을 위해 더 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개발도상국들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법적 장치 마련에 손을 놓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직업을 알선하는 중개인들은 수익을 늘리기 위해 인신매매에 버금가는 조건으로 ‘무지한’ 노동자들을 속여 마구잡이로 넘기고 있다.
그 결과 상당수 노동자들이 정신적 스트레스와 신체적인 구속, 빚, 위협, 감금, 강제 추방 등에 시달리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국제노동기구(ILO) 등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약 400만~2700만명이 강제 노역에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 국무부의 조사 결과 버마·북한과 함께 밀입국·불법체류자 관리에 최악의 수준을 기록한 말레이시아의 경우, 구조적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업주에 반항하기 힘들다. 말레이시아에서 취직하려는 외국인은 법에 따라 한 업체와 다년의 계약을 맺고, 여권을 고용주에게 넘겨야 한다. 억압에 못이겨 도망을 치면 그대로 불법 체류자로 전락, 체포되거나 심지어 폭행까지 당하고 본국으로 추방될 수도 있다.
말레이시아의 컴퓨터 부품업체인 ‘로컬 테크닉’에 취직한 방글라데시 출신의 한 노동자는 신분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익명을 요구하면서도 “완전히 속았다”고 폭로했다. 그가 말레이시아로 오기 위해 중개료 명목으로 약속한 돈은 3600달러. 중개인은 숙식과 세금을 제하고도 114달러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고 약속했다. 막상 와서 보니 매달 중개인 몫으로 100달러를 떼어갔고, 고작 14달러만이 수중에 남았다. 3년간 꼬박 모아도 겨우 504달러를 쥘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필리핀대 노동정의센터의 린 오프렌코 소장은 “과거에는 주인이 직접 노예를 소유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고용주가 외국에서 온 노동자를 낯선 환경에 고립시키고 무력하게 해 강압을 수용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위크는 “더 큰 문제는 각국 정부나 서방기업·언론 등이 개선을 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언론은 기사를 팔 수 있는 선정적인 매춘 문제에 집중하고, 서방 기업은 이윤을 위해 계속 하청을 넣고 있는 가운데 착취 고용주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지희기자 viole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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